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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도서관




도서관은 원래 이름이 있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오래되어서 사서 할아버지조차 도서관의 이름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지금은 누구도 그 이름을 기억하고 있지 못했다. 그래서 도서관은 단지 ‘오래된 도서관’이라고만 불리고 있었다.
오래된 도서관에는 <모든 책>이 있었다. 내가 방금 말한 <모든>이라는 단어는 오래된 도서관에서는 매우 복합적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한 권이면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이란 뜻으로 통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이런 개념을 이해하는데 익숙하지 않다는 걸 알지만 이렇게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나는 초급 학교 때부터 간간이 그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오래된 도서관의 <모든 책>은 올리브유를 입힌 누런 종이로 되어있었다. 도서관의 안과 밖이 모두 습기로 눅눅해지는 여름 한 철, 나는 그곳에서 책장에 올리브유를 다시 입히는 작업을 했다. 작업이라고 말했지만 말처럼 거창하거나 힘든 일은 아니었고, 책장을 한 장 넘기고 기름이 적당히 묻은 솔을 책장에다 한 번 두 번 위아래로 그어주는 간단한 일이었다. 사서 할아버지(사서 할아버지의 무릎까지 내려오는 기다란 하얀 수염은 참 멋지다!)가 도서관의 일들 중에서 어린 내가 해낼만한 비교적 간단한 일을 맡긴 것이다.

사실 그 <모든 책>은 매년 그렇게 올리브유를 새로 바를 필요도 없었다. 보관 상태는 아주 훌륭했다. 벌레 먹은 흔적이나 습기나 세월 때문에 삭은 흔적 따위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나 사서 할아버지는 여름이 오고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되기 전이면 낡은 달력을 한 장 찢어내듯 그 작업을 매년 거르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사서 할아버지식 연대 측정법> 같은 것이었다. 사서 할아버지의 1년은 무인도에 표류한 남자가 암갈색 야자수 밑동에 날짜 빗금을 정성껏 칼로 새겨 넣어야만 하루를 보냈다고 말할 수 있듯, 올리브유 덧칠 작업이 <모든 책>들에게 이뤄져야지만 1년을 비로소 보냈다라고 말할 수 있었다.

나는 몇 장은 개척시대 미국의 장난꾸러기 두 소년처럼 신나게 칠했다. 하지만 오십 장을 넘어가면서부터는 슬슬 지겨워지곤 했다. 그래서 나는 만 년이나 살아서 세상을 다 산 심심하고 지루한 거북이처럼 내 지혜를 짜서 재미있게 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그건 뭐 별로 대단한 방법은 아니었다.

재미있게 일할 수 있는 방법이란 <모든 책>을 한 장 읽고 나야지만 비로소 한 장을 칠하는 방법이었다. 그 방법은 시간이 좀 더 걸리긴 했지만 나나 사서 할아버지나 있는 것은 시간뿐이었으므로 우리는 아무도 서로의 일에 상관하지 않았다. 나는 사서 할아버지의 기분 좋은 낮잠과 가끔씩 들려오는 그의 그렁그렁 거리는 기분 좋은 콧소리를 들으며 일을 계속했다. 그것은 확실히 그럴듯한 방법이었다.

<모든 책>의 이야기는 재미있고 우스꽝스럽고 어떤 의미에서는 신비한 이야기도 있었다. 그러나 어떤 대목들은 당시의 내 나이로서는 맛볼 수 없는 심심한 설탕처럼 아무 맛도 느낄 수 없는 것들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 내가 초급 학교를 졸업하고 이것저것 바빠 사서 할아버지에게 갈 수 있는 날은 점점 줄어들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오래된 도서관으로 가는 길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어른이 되고 만 것이다.

어른이 된 나는 다른 어른들의 많은 책들을 보게 되었다. 나는 처음 그들의 책을 보고 조금 놀랐는데 그건 그들의 책이 어디선가 이전에 한번 본 듯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책을 쓴 저자라는 사람들이 사서 할아버지가 예전에 종종 말해줬던 <모든 책>의 좀벌레들이란 걸 알았다.

사서 할아버지는 잠이 많아 근무 중에 종종 주무시곤 하는데 그때마다 살며시 들어와 몰래 사각사각 <모든 책>의 페이지를 갉아먹는다는 것이다. 그들이 얼마나 감쪽같이 갉아먹었으면 <모든 책>에 그 페이지가 원래 있었나 없었나 사서 할아버지를 늘 헷갈리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책>은 결국 <모든 책>이었기 때문에 그깟 모든 책의 좀벌레들 얼마가 갉아먹는다고 크게 손해를 보거나 내용이 뒤섞이는 일은 없어서 사서 할아버지는 늘 대수롭지 않게 흘려보내 버리곤 하셨다. 더군다나 몰래 기어 들어오는 좀벌레들을 일일이 다 상대해 줄 수도 없지 않는가.

그로부터 나이가 더 들어 나는 해보고 싶은 일을 찾게 되었다. 물론 나이가 더 많아진다면 하고 싶은 일이란 게 없어져버리거나 바뀔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나는 내가 본 세계를 내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싶다는 걸 알았다. 자기가 본 것 혹은 봤다고 믿고 싶은 것만을 이야기 하는 것 말고 달리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세상에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작가가 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모든 목소리의 기원은 결국 오래된 도서관의 <모든 책>이었기 때문에 나 역시 <모든 책>의 좀벌레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은 나를 조금 우울한 기분에 빠져들게 했다.
그것은 이미 어른이 되어 버린 나에게는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슬픈 일이었지만,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면 그래도 어떤 의미가 있는 일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다음 달이면 나는 5480살이 된다. (이건 절대 비유적이거나 상징적 의미가 아니다). 5500살이 되기엔 20년이 더 남아있지만, 나는 이만큼 살았고 이 정도의 하고 싶은 이야기가 내 속에 쌓여 있다는 생각이 들면 기분이 점점 좋아진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지만 ‘내 이야기’라고 하는 건 엄밀히 말하면 없다. 만약 내가 첫 번째 책을 만들어 내게 되면 나는 그 책의 앞부분에 이런 정직한 인용구를 달고 싶다.

“나는 이 책을 <모든 책>의 673,538쪽에서부터 7,229,134쪽 사이에서 내 나름대로 인상 깊었던 부분들을 거의 그대로 가져왔고 몇몇 등장인물들은 사정상 이름을 바꾸었음을 밝혀둡니다.”라고.





by hiwrite | 2005/10/30 07:10 | A4 | 트랙백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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